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비야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나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동안이다. 당장 문서 상단의 첫 번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이가 만으로 쳐도 무려 '''88세'''이고,[* 실제로 이 사진은 2022년 2월 10일에 청소년의 날 기념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.] 문서 상단의 두 번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이도 만 76세이다.[* 실제로 이 사진은 2009년 9월 23일에 [[버락 오바마]] 당시 [[미국 대통령]]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.] 그와 비견되는 동안이던 [[짐바브웨]]의 [[로버트 무가베]]마저 84세이던 [[2008년]]에 [[전립선암]]을 진단받고 11년 후인 2019년에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. 폴 비야는 90세가 된 [[2023년]] 현재까지도 건강 악화에 대한 어떠한 기사도 뜨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. * [[한비야]]의 저서 '1그램의 용기'에 따르면 카메룬에서는 비야라는 이름이 자기 나라 독재자 이름이라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이라는데, 본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인물을 말하는 것이다. * '방해 받지 않고 일하고 싶다'는 이유로 스위스에 있는 [[제네바]]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짧게는 2주, 길게는 3개월을 보낸다고 하는데, 카메룬의 국영 언론은 이를 '단기 체류'라고 포장하고 있다. 그리고 비야는 2009년에 9월 3일에 프랑스에서 3주간 휴가를 보낼 때 43개의 호텔 객실을 사용하며 800,000유로(약 840,000달러)의 청구서와 함께 하루에 42,000유로(약 44,200달러)나 되는 스위트룸에 숙박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[* 참고로 당시 카메룬의 1인당 GDP는 1,446달러도 되지 않았는데, 비야는 일반적인 카메룬인들의 '''30년치 연봉'''을 넘는 거액을 '''단 하루 만에''' 썼으니 카메룬인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.]. 그의 해외 숙박이 얼마나 악명(?)이 높은지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는 아예 [[https://fr.wikipedia.org/wiki/S%C3%A9jours_priv%C3%A9s_de_Paul_Biya|'''폴 비야의 개인 숙박''']]이라는 항목까지 만들어질 정도다. * 결혼을 2번 했다. 1961년에 잔이렌 비야(Jeanne-Irène Biya, 1935 ~ 1992)와 결혼하고 아들 2명을 낳았는데, 이들 중 장남 에마뉘엘 프랑크 비야(Emmanuel Franck Biya, 1971 ~)는 [[2021년]]부터 [[독재자/세습|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을 '잠재적인 대체자'가 될 것]]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. 첫 아내가 1992년에 죽자 비야는 1994년에 37세 연하인 샹탈 비야(Chantal Biya, 1970~)와 결혼했는데, 샹탈 비야는 [[에이즈]] 치료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 단체를 운영하며 영부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,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요란한 것으로 유명하다. 비야는 재혼한 부인과는 아들 1명과 딸 1명을 낳았는데, 이들 중 딸인 브렝다 비야(Brenda Biya, 1997~)는 미국 [[로스앤젤레스]]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[[트위터]]에 카메룬 기득권층의 입장과 반하는 글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. * [[1985년]]에 발행된 1,000 블루 카메룬 프랑 지폐에는 비야의 초상화가 들어갔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